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5~10년 후에는 무엇이 변할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을 많이 하대요...

하지만

'5~10년 후에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까?'

라는 질문은 거의 안합디다.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답은 무엇일까요?

by 하예나 | 2008/08/10 10:07 | 세상속으로 | 트랙백 | 덧글(0)

서태지 돌아오다...

조용필과 서태지.

 

이 두사람은 이름 그 자체가 뿜어내는 포스 하나로 격을 달리한다.

상업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구매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가치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사를 조용필 이전과 조용필 이후로 구분하는 데에 크게 의견을 달리하는 이 별로 없으리라 본다. 그 조용필 이후의 세대를 다시 구분하자면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구분하는 것에도 큰 이견이 없지 않을까? 다만 조용필에 의한 구분이 아닌 서태지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사를 구분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다. 파괴력이나 영향력 자체로는 충분한 '포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오랜기간 숙성된 연륜이 서태지에겐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대중음악계는 이 두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크나 큰 행복이라 할 수 있겠다. 전혀 다른 스타일과 전혀 다른 지지층을 가지고 있으나, 음악적 실험정신과 스케일이 유사하고 무엇보다 수퍼스타임에도 이들이 가지는 도전적 개척정신과 음악적 완성도가 이들의 격을 다르게 만들어주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80년대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가 담긴 1집과 함께 시작되었고 '어제 오늘 그리고'와 '미지의 세계'가 담긴 7집으로 완성되었다.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 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음악 장르와 조용필만의 창법으로 한 폭넓고 깊은 음악세계를 선보였다. 그의 Discography를 훑어보면 그가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참으로 다양하게 흘러가고 진화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음악들은 조용필에 의하여 조용필의 장르로 소화되었다. 또한 유난히 해외 팝 음악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오던 80년대의 시기에 조용필은 전영록, 이용, 이선희가 아닌 마이클 잭슨, 왬, 듀란듀란,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글로벌 컴피티터와의 맞짱을 뜨며 국내 음악 시장에서 자존심을 지켜냈다.

 

80년대 청소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조용필의 파괴력이 감소해 가며 Adult Contemporary한 이미지로 변화하던 90년대 초에 그들만의 영웅에 목말라하던 틴에이저들에게 불현듯 서태지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TV 데뷔프로그램을 직접 시청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서태지의 시작을 함께 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서태지 역시 1집부터 좋았다. 조용필의 1집이 그러했던 것 처럼 서태지의 1집도 정말 좋았다. 서태지는 대한민국에 없던 것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게 그의 나이 스물 한 살 때였다.

 

그 이후의 서태지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충실한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세상과 맞짱을 떴다. 그리고 그는 연전연승했다. 무엇보다 서태지는 자기만의 룰을 만들고 그 룰을 대한민국 가요계에 공식화했다. 앨범발표-활동-잠적-복귀... 아직도 이 룰을 따르는 이들이 많다. 그 이전의 룰은 매년 한,두장씩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서태지는 과감히 잠적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보다 더 큰 자신감이 어디있겠는가...

 

조용필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서태지의 음악도 변화하고 진화한다. 이제 서태지가 다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접한 그의 새 음악에 대한 느낌이 좋다. 예전에 비하여 많이 부드러워지고 대중적인 색채가 가미된 것으로 보아 서태지도 조용필의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느낌도 받았다. 물론 그 속에 서태지만의 칼날이 담겨있음도 함께 느꼈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대중음악계의 두 거장, 조용필과 서태지.

이 두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중음악의 역사에 격을 같이 할 아티스트가 과연 언제 나오게 될 지도 의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너무나 대중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난해하거나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과연 서태지가 조용필의 음악을 리메이크 해 보는 날이 있을까하는 점이다. ^^

by 하예나 | 2008/08/10 09:58 | 세상속으로 | 트랙백 | 덧글(0)

윤길현 선수에 대한 단상

윤길현 선수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너무나 일방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모습이 한편 불쌍하기도 하네요.

공교롭게도 윤길현 선수가 빈볼을 던진 그 전날 삼성의 배영수 투수가 한화의 클락 선수의 뒤통수를 맞춰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길현 선수처럼 커다란 이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과거 배영수 선수는 빈볼때문에 호세에게 맞은 적도 있는데...


11년 선배에 대한 예의가 이유 중의 하나이긴 한데,
그런 논리라면 야구의 대선배인 김성근 감독에게 꼬박꼬박 설전을 벌인 두산의 김경문 감독도 Out 감으로 충분할 거 같은데..
경기 중에 욕설하는 입모양은 윤길현 선수 뿐만 아니라 부지기수로 많은데...
오히려 와이번즈에 대한 마녀사냥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요즘 인터넷 상에서 SK와이번즈가 '스크' 또는 '슼충'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와이번즈가 너무 이기기 위한 야구를 하기 때문 아닐까요?

물론 승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인 것 같네요.

by 하예나 | 2008/06/26 14:24 | 세상속으로 | 트랙백(2) | 덧글(2)

촛불집회와 기업광고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조선일보에 게재된 우리회사 광고는 태안경제 살리기 공익광고였네요.
그 광고가 태안군민들에게는 힘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광고주 중 하나인 우리회사가 가지는 상징성으로 인하여 성난 민심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가 광고를 내야할 이유가 있었을거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오늘 조중동 뿐 아니라 한겨레, 경향에도 같은 광고가 실렸는데, 조중동에 광고냈다고 민중이 사람들에게 통신사를 옮기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안타깝네요.


저는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것이 잘못된 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 논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검역주권의 문제가 너무 확대해석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야 검역주권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충분히 될 만한 사안이라고 보지만, 그 파장이 확대되어 다른 부분으로 번져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검역주권 문제와 SK텔레콤이 조중동, 경향, 한겨레 등의 일간지에 기업공익광고를 내는 것에 대하여 과연 어떤 논리적 연결이 되는 것인지는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난 민심이 있는 반면 침묵하는 다수도 많이 있기에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할 것이며, 또한 우리회사의 정책이 성난 민심을 피해가는 방향으로 정해지는 것도 그리 합당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만약, 경향과 한겨레에만 전면광고 내고 다음 아고라에만 배너광고 내자고 말한다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요?


광고를 내는 목적이 언론사에게 광고비를 주기 위함만은 아닐테고, 또한 이번 광고의 내용은 공익광고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쓰다보니 또 이리 횡설수설이 되었네요.

저는 조중동에 광고 내는 것 찬성합니다. 경향, 한겨레에 내는 것도 찬성합니다.

by 하예나 | 2008/06/26 14:18 | 세상속으로 | 트랙백 | 덧글(0)

이것이 Business-friendly 정책인가?

저소득층 이동전화 요금 감면 정책 시행에 따른 연 5,050억원의 비용을 통신서비스 사업자가 부담하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생이 아닐 수 없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사업자가 짊어지라고 한다면 어떤 기업이 열심히 일 해서 기업의 성장을 이루려 하겠는가?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이 동네 북 신세가 된 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도가 지나쳐도 너무나 지나치게 흘러가고 있다. 배부른 기업의 얄팍한 엄살이라고 말하는 사람 있을지 몰라도, 기업의 기본적인 목표는 이윤과 고용 창출이다. 그리고 나아가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업 환경은 기업에 그리 여유롭지 않다.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를 소홀히 하면 주주들의 어김없는 심판이 날아든다. 실로 하루하루가 전쟁터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기업은 끊임없이 개선하고 스스로 진화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밖에서 볼 땐 백조의 여유로움만 보일 수 있으나 기업내부의 다리는 쉼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적자를 내는 기업은 용서받고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이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논리는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있을 수 없다.

무릇 기업은 이윤과 고용의 창출에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처럼 옆 동네 패거리 싸움에서 날아온 돌멩이를 맞아야하는 현실이라면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저소득층에게 과연 이동전화 요금만 감면해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인가? 생활필수품이라면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 해결, 즉 옷도 무상으로 지급하고, 식권도 나눠주고, 거주공간도 제공해 주고 또, 냉장고도 무료로 제공해주고, 보일러 기름도 제공하고... 뭐 이런 것들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이동전화 요금이 그들에게 그토록 우선순위가 높은 것인가?

by 하예나 | 2008/06/12 13:27 | 세상속으로 | 트랙백 | 덧글(0)

그렇다면 두번째는??

역시 떨.린.다.

by 하예나 | 2008/05/28 13:45 | 언저리인생 | 트랙백 | 덧글(0)

블로그 시작하다...

항상 처음 시작은 떨.린.다.

by 하예나 | 2008/05/28 13:34 | 언저리인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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